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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기회와희망 2023. 7. 1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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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등재 2000년

영문명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기념물이자 무덤의 일종으로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으로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형태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문화의 형성 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 문화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등재기준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1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장례와 제사를 위한 거석문화유산이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세계 어느 유적지보다 선사시대 기술과 사회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완전성

세 지역 모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 분포하는 다양한 형태와 유형의 고인돌을 통해 거석문화 발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는 한국 고인돌의 기원과 성격을 비롯해 고인돌의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어 유산의 완전성에도 기여한다.

 

진정성

고창, 화순, 강화 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대부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 거대한 규모의 석조유적이기 때문에 변형이 쉽지 않아 장기 보존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역사적 배경

고인돌은 기원전 2000~1000년, 전 세계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의 한 형태이다. 영국의 스톤헨지, 오크니 제도의 돌무덤 유적, 그리고 아일랜드의 보인(Boyne) 굴곡부 유적, 서아프리카의 돌무덤처럼 거석을 사용하는 새로운 기술이 돌을 정렬하거나 쌓아 올리는 의식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경 동아시아 선사시대의 주목할 만한 유적으로 티베트, 쓰촨, 간쑤 등 중국 서부와 산둥반도, 일본 규슈 북서부와 같은 해안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기원전 3세기경에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순 고인돌은 이보다 조금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유적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 및 관리 체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연속유산으로 세 지역 모두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건축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고인돌 유적의 보존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보수와 유지관리 및 주변 지역의 현상변경에 관한 심의와 허가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다. 유산이 속한 각 지자체는 구체적인 보존관리 및 정비사업을 담당하고, 현장에는 유산의 보존관리를 담당하는 상설관리소가 있다. 고창 고인돌박물관과 화순고인돌군 발굴지 보호각, 강화 역사박물관은 각 지역 방문객들에게 고인돌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유산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3, 4년 주기로 전문가들의 정밀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인돌의 보존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고인돌 보존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화재와 주변 환경 훼손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매년 잡초제거 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흙이나 나무뿌리에 의해 붕괴된 고인돌에 대해서는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정비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본문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밀도로 분포된 고인돌 군이다. 이들은 고인돌의 채석, 운반, 건설, 그리고 동북아시아 고인돌 형태의 변화 경향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보존하고 있다.

 

고인돌은 기원전 2000~1000년, 세계 각지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의 표현이다. 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시대 무덤은 기원전 1000년 경의 수백 기의 돌무덤을 보여준다. 고인돌은 티베트, 쓰촨, 간쑤 등 중국 서부와 산둥반도, 일본 규슈 북서부와 같은 해안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고인돌은 한국의 청동기 시대에 전해졌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군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고인돌 건설은 기원전 3세기에 중단되었다. 화순 고인돌은 이보다 조금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군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은 보통 거대한 뚜껑 돌을 받치고 있는 두 개 이상의 가공되지 않은 돌덩어리 등으로 구성된다. 보통 고인돌은 신석기, 청동기 시대 중요 인물의 시신이나 유골 위에 세워진 단순한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흙무덤이 고인돌을 덮고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풍화작용과 동물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유골을 가족 묘지에 묻기 위해 유골을 보관하는 제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인돌은 보통 높은 기념물 위에 있는 고지대 묘지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있는 마을에서 고인돌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형태에 따라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 두 가지 형태의 고인돌이 알려져 있다. 첫째, 탁자식 고인돌은 지상 건축물로 석곽 또는 석관 끝에 4개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뚜껑 돌을 얹는 방식이다. 둘째, 바둑판식 무덤은 돌담이나 붉은 돌담으로 만든 무덤방을 땅속에 만들고 뚜껑 돌은 지상에 놓인 돌담으로 지탱하는 방식이다. 바둑판식의 변종도 있는데, 이는 땅에 묻힌 돌 위에 직접 덮개돌을 얹은 것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규모가 크고 다양한 형태로 죽림리 매산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대부분의 고인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의 남쪽 기슭 15~50m 높이에 위치해 있는데, 뚜껑 돌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442기가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고창 고인돌 유적과 마찬가지로 지석강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언덕 능선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하나하나가 고창보다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효산리 고인돌은 158기, 대신리 고인돌은 129기다. 고인돌을 만든 돌이 어디서 채석된 것인지 식별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해안가 섬인 강화도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강화의 고인돌은 다른 유적지보다 높은 지점에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형태가 많은데, 특히 부근리와 고천리 고인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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