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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

기회와희망 2023. 7. 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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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亂中日記)』: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陣中日記)

등재 2013년

영문명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

 

본문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亂中日記)』 (1545~1598)는 한민족의 가장 존경받는 영웅 중 한 명인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조선 침략 당시였던 임진왜란(1592~1598) 기간 동안 진주에서 쓴 진중일기(陣中日記)이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1월부터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죽음을 앞둔 1598년 11월까지 거의 매일 쓴 7권 205쪽 분량의 사본으로 구성돼 있다.

히데요시(1536~1598)의 조선 침략으로도 알려진 정유재란은 중국 명나라의 패권에 도전하고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야심에 의해 촉발됐다. 중일 양국은 이 전쟁에서 대량 생산된 무기를 사용했고, 조선은 세계 최초의 ‘장갑선(裝甲船)’을 건조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각국과 유럽에서 온 용병들이 참여한 흔적도 있다.

 

『난중일기』는 전장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무장의 기록으로, 세계사에서도 이색적이다. 개인적인 일기 형식으로 쓰였지만, 매일의 전투,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 고찰, 당시 날씨, 전장의 지형, 서민들의 생활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는 현재도 조선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있는 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문학적 가치도 높다.

 

세계적 중요성, 독창성, 대체 불가능성

『난중일기』는 임진왜란(1592~1598)의 역사적 기록이다. 표면적으로 임진왜란은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명과 손을 잡은 삼국 전쟁이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파견한 중국군에는 동남아시아나 유럽에서 온 용병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임진왜란은 아시아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 전쟁은 또한 일본과 중국이 산업화된 무기고를 증강하기 위해 일본제 소총과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 제조되어 중국이 사용한 '팔랑기'(중국에서는 '폴랑기', 한국에서는 '브랑기'라고도 불림)라고 불리는 유럽산 대포 등 새로운 대량생산 총기 개발 및 도입 경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도입 경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케네스 스워프는 2005년 논문과 2009년 저서에서 임진왜란을 '제1차 대동아전쟁'으로 규정했다.

 

임진왜란 관련 전사 자료 중 육전 관련 자료는 비교적 풍부하지만, 해전 관련 자료는 『난중일기』가 유일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난중일기』는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군사적 충돌을 포함한 세계사 연구에 있어 중요하며,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임진왜란 해전을 연구하기 위해 『난중일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근대 유럽 국가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의 장갑선'으로 알려진 '거북선'의 기록과 그 전술은 전사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1848-1934)는 이순신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1905년 5월 러일전쟁의 대마도 해전에서 이순신의 전술을 사용해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했다고 공언했다. 오늘날 임진왜란 해전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난중일기』를 임진왜란 해전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 사실은 앞서 언급한 이 분야의 많은 연구 성과에 의해 확인된다. 『난중일기』'는 1962년 국보(국보 제76호)로 지정됐으며, 충남 아산에 있는 국립기관인 현충사박물관이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편집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수군을 지휘하여 한산도, 명량 등에서 왜군을 격퇴하여 전란의 전황을 조선의 승리로 이끌었으며, 사후 조선 조정으로부터 충무공의 시호를 받은 여해(汝諧)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발발한 선조 25년(1592) 년) 음력 1월 1일(양력 2월 13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선조 31년(1598년)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16일)까지 2,539일간의 군중 생활과 전란의 정황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일기이다.

 

'난중일기'라는 제목은 조선 정조 19년(1795년) 왕명으로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서 처음 붙였다. 원래 제목은 연도별로 '壬辰日記'(임진일기), '癸巳日記'(계사일기) 등 일기가 다루는 연도의 간지를 붙여 표기했다. 현존하는 난중일기 판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자필 원본은 초서로, '이충무공전서'의 편찬과 함께 원본 일기의 초서를 정자(正字)로 탈초(脫草)한 전서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서본은 자필 원본을 탈서 편집한 것인데, 원본 일기에 없는 부분(을미년 일기의 경우 전서본만 존재)을 포함하고 있어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1935년 조선사편수회가 전서본과 자필본을 합본하여 남중일지를 간행했다.

 

7년간의 전쟁 중 출정하고 이순신 본인이 항명죄로 한양으로 송환된 시기에는 일기를 쓰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날짜별로 간지와 날씨를 빠뜨리지 않고 틈틈이 기록했다. 내용에는 시취가 넘치는 일상생활, 동료 및 친지들과의 왕래 교섭, 사적인 일, 수군 통제에 관한 비책, 충성과 격려의 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가족에 관한 내용은 물론 상관과 장군 및 부하들 간의 갈등 문제를 비롯해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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