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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기회와희망 2023. 7. 31. 14:35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등재 2000년

영문명 Gyeongju Historic Areas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조각, 탑, 사찰지, 궁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시대의 우수한 불교유적과 생활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아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뛰어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의 생활문화와 예술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의 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불교유적이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사원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있는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

등재기준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불교 건축 및 생활문화와 관련된 우수한 기념물과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신라 왕실의 역사는 1,000년에 이르며, 남산을 비롯한 수도 경주와 그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은 신라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성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는 각기 다른 종류의 유산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진정성이 높으며, 건축, 조각, 탑, 왕릉, 산성 등은 모두 원형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절터나 궁궐터의 경우 그 흔적만 남아있고, 건물의 원래 배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기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명활산지구 등 5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 전체와 지역 내 많은 문화재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또한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건축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또한, 매장문화재가 풍부한 지역 특성상 경주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토목, 건축 행위에는 문화재 영향 검토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보존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보수 및 유지관리, 주변 지역의 현상 변경에 관한 심의와 허가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다. 경주시는 구체적인 보존관리 및 정비사업을 담당하고, 남산의 경우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관리한다.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3, 4년 주기로 전문가의 정밀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보존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문화재 수리는 해당 분야의 문화재 수리 기술자 자격시험에 합격한 공인 문화재 수리 기술자가 담당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지정된 유산 주변의 토지를 꾸준히 매입해 관련 유산을 더 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각 유적지구 간 연계성을 높여왔다. 등록 당시 동해남부선 철로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권고했고, 철로는 2014년에 철거될 예정이다.

본문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7세기~10세기에 절정을 이룬 한국 불교예술의 뛰어난 전형들이 조각, 부조, 탑파(塔婆, stupa), 사찰 및 왕궁 유적 등의 형태로 집중되어 있다. 한반도는 약 1,000년 동안 신라 왕조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경주와 그 주변에 있는 기념물과 유산들은 신라의 문화적 업적을 웅변해 주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국의 불교 건축 및 일반 건축 발달에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다수의 기념물과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유적과 기념물이 있는 경주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던 곳이었다. 신라의 씨족은 기원전 57년, 한반도 남동쪽을 지배했다. 이후에 한반도 내에서는 오랫동안 경쟁하는 왕국들 사이에 투쟁이 있었으며, 신라는 7세기에 중국의 당(唐)과 손잡고 경쟁국을 물리치고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했다. 통일신라는 10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왕조를 유지하였다. 신라의 지배층은 도시에 많은 공공건물, 궁궐, 사찰과 성채를 건설했다. 지배층의 무덤은 이 고대 도시의 인근에 남아 있다.

 

7세기에 중국에서 대승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되었고 신라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존의 여러 토착 신앙을 숭앙하였던 장소인 남산은 불교의 성산이 되어 신도들을 끌어 모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과 장인들이 사찰, 사당, 수도처를 지었다.

 

신라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는 또 한 차례 내부 투쟁의 시기를 겪었다. 한반도는 조선에 의해 다시 통일되어 1910년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18세기에는 만주족의 침략을 받아 황폐화되었다. 조선은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다. 이 긴 기간 동안 많은 주요 건축물이 쇠락하고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세 군의 주요 지구로 구분된다. 더욱이 세계유산에는 황룡사(皇龍寺)와 산성이 포함된다. 남산지구는 경주시의 북쪽에 있고, 지정된 지역에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과 사적들이 있다. 월성지구의 주요 기념물은 황성옛터, 경주김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의 계림(鷄林), 임해전지(臨海殿址)에 있는 안압지(雁鴨池)와 첨성대(瞻星臺)이다. 고분 공원 지구는 세 그룹의 왕실 무덤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고분들은 돔 형태지만 몇몇은 반달 모양, 조롱박 모양이다. 고분에는 자갈로 덮인 이중 목관이 안치되어 있다. 풍부한 금제 부장품, 유리, 질 좋은 도자기들이 발굴되었으며, 초기 고분 중 한 군데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날개 달린 말을 그린 말다래 천마도(天馬圖)가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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